엑셀은 이상한 소프트웨어다. 개발자들이 특정 프로그래밍 언어나 운영체제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지만, Excel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드물다. 너무 오래, 너무 널리 사용된 탓에 이제는 기술이라기보다 사무실의 일부처럼 보인다.

하지만 지난 반세기 동안 기업의 운영 방식을 가장 크게 바꾼 소프트웨어를 하나 고른다면 스프레드시트는 상당히 강력한 후보라고 생각한다. David Oks의 「Seeing like a spreadsheet」가 흥미로운 것도 같은 이유다. 스프레드시트는 계산을 빠르게 만든 데 그치지 않고 기업이라는 복잡한 대상을 행과 열, 변수와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게 만들었다. 표현할 수 있게 되자 비교할 수 있었고, 비교할 수 있게 되자 시뮬레이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뮬레이션할 수 있게 된 순간부터 기업은 점점 최적화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AI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AI가 기업에 가져오는 가장 큰 변화는 문서를 빨리 쓰거나 코드를 더 많이 만드는 것이 아닐 수 있다. 스프레드시트가 숫자를 프로그래밍 가능하게 만들었다면, AI는 업무 자체를 프로그래밍 가능한 대상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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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f?의 가격이 거의 0이 되었다

전자 스프레드시트 이전에도 기업은 숫자를 사용했다. 회계가 있었고 예산이 있었으며 투자수익률도 계산했다. 대기업 본사에는 수많은 보고서가 올라왔고, 사람들은 그 숫자를 다시 표로 옮겨 계산했다. 다만 계산은 비쌌다. 매출이 10% 감소하면 어떻게 되는지, 금리가 2%p 오르면 투자수익률이 어떻게 변하는지, 원재료 가격이 달라졌을 때 어느 공장을 폐쇄해야 하는지 알아보려면 계산을 다시 해야 했다. 질문을 하나 더 던지는 것 자체가 비용이었다.

1979년 등장한 VisiCalc와 그 뒤를 이은 Lotus 1-2-3, Excel이 바꾼 것은 이 비용이었다. 숫자 하나를 바꾸면 관련된 수식 전체가 다시 계산됐다. 기업 경영에서 가장 강력한 질문 가운데 하나인 What if?의 한계비용이 거의 사라진 것이다.

이전의 회계가 주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기록했다면 spreadsheet model은 어떤 조건을 만들면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가를 묻게 만들었다. 이 변화는 1980년대 미국 금융시장의 구조 변화와 절묘하게 겹쳤다. 금융 규제 완화, 고수익채권 시장의 성장, M&A와 LBO의 확대, shareholder value 중심 경영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기업을 현금흐름의 집합으로 모델링하는 능력의 가치가 크게 높아졌다.

스프레드시트가 금융화를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금리, 규제, 자본시장 구조와 경영자 보상 같은 변화가 훨씬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다만 스프레드시트는 그 사고방식을 싸고 빠르게 실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공장, 엔지니어, 공급망, 조직문화, 고객 관계와 축적된 기술로 이루어진 회사를 Revenue, Cost, EBITDA, CapEx, Interest, Cash Flow로 표현하면 현실의 많은 부분이 사라지지만 계산과 비교는 훨씬 쉬워진다.

그리고 계산하기 쉬운 세계는 관리하기도 쉽다.

더 중요한 변화는 비개발자가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프레드시트의 역사에서 내가 더 흥미롭게 보는 부분은 따로 있다. 비개발자가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Spreadsheet formula는 사실 작은 프로그래밍 언어다. 사용자는 셀을 변수로 만들고 셀 사이에 dependency를 정의하며 conditional logic을 넣고, 데이터를 불러와 계산 결과를 다시 다른 계산의 입력으로 연결한다.

이 때문에 spreadsheet는 오래전부터 대표적인 end-user programming 환경으로 연구됐다. 전문적인 programming training을 받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업무에 필요한 작은 application을 직접 만드는 방식이다. 이 변화는 조직적으로 상당히 중요했다. 과거에는 시스템이 필요하면 IT 부서에 요청해야 했지만, 스프레드시트 이후에는 재무팀이나 영업팀 직원이 예산 모델, 재고 관리표, sales forecast, 가격 모델, 투자심사 모델과 프로젝트 관리표를 직접 만들 수 있었다. 일부 기업에서는 규제 보고와 결산 같은 중요한 업무까지 spreadsheet 위에서 돌아가기 시작했다.

컴퓨팅 권한이 중앙 IT에서 현업으로 내려온 셈이다. 이것은 엄청난 생산성 향상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를 만들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Excel 파일, 어떤 수식이 맞는지 아무도 모르는 workbook, 공식 ERP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제 업무에는 필수적인 spreadsheet가 조직 곳곳에 쌓였다. final.xlsx, final_v2.xlsx, final_revised_real_final.xlsx 같은 풍경은 단순한 파일 관리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분산된 소프트웨어 개발의 흔적에 가깝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Excel의 실패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너무 유용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였다. 중앙 시스템은 안전하지만 느렸고, spreadsheet는 위험하지만 빠르고 유연했다. 기업은 결국 둘을 모두 사용하게 됐다.

ERP / Database → 공식적인 truth
Spreadsheet    → 실제 업무가 변하는 edge

ERP와 SaaS, 데이터웨어하우스가 아무리 발전해도 현실의 업무에는 공식 시스템이 아직 표현하지 못한 예외와 새로운 요구가 계속 생긴다. 스프레드시트는 그 틈을 메우는 조직의 비공식 프로그래밍 언어가 되었다.

Spreadsheet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숫자가 맞을 때다

스프레드시트의 문제를 단순히 Excel error로 이해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수식이 틀리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문제는 수식이 정확하게 작동할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기업이 어느 사업부를 평가하기 위해 ROIC를 사용한다고 하자. 처음에는 ROIC가 사업 효율성을 관찰하기 위한 지표다. 그러나 경영자의 보상과 자본 배분이 ROIC에 연결되는 순간부터 ROIC는 관찰되는 숫자에서 최적화해야 하는 목표로 바뀐다. 조직은 이 숫자를 개선하기 위해 재고와 인력을 줄이고 CapEx를 미루며, 자산을 매각하거나 outsourcing을 늘릴 수 있다. 일부는 실제 효율성을 높이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업을 좋게 만드는 것과 지표를 좋게 만드는 것이 갈라질 수 있다.

Goodhart's Law와 Campbell's Law가 오래전부터 설명해 온 것도 이 문제다. 측정지표가 중요한 의사결정에 사용될수록 사람들은 그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행동하고, 그 행동이 다시 측정 대상 자체를 바꾼다. 스프레드시트가 이를 발명한 것은 아니지만 숫자를 빠르게 계산하고 비교하고 target으로 연결하는 비용을 크게 낮췄다. 이 루프가 몇 번 반복되면, 지표를 개선하는 경로와 실제 현실이 좋아지는 경로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벌어질 수 있다.

여기까지 오면 모델은 더 이상 현실을 묘사하는 도구에 머물지 않는다. 모델이 현실을 만드는 장치가 된다. 나는 spreadsheet의 가장 큰 영향도 여기에 있었다고 본다. Excel은 기업을 숫자로 표현했고, 기업은 점점 숫자로 운영하기 좋은 형태가 되었다.

그렇다면 AI가 바꾸는 것은 무엇인가

이 관점에서 AI를 보면 spreadsheet와 상당히 닮아 있다. 다만 programming의 단위가 다르다. Spreadsheet에서는 사용자가 셀, 수식, 표와 모델을 만들었다. AI에서는 Goal, Task, Context, Tool, Permission, Evaluation과 Agent를 조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페이스는 수식에서 자연어로 바뀌고 있다.

이 변화는 매우 크다. Excel이 회계사와 금융인에게 programming capability를 줬다면 AI는 거의 모든 knowledge worker에게 비슷한 capability를 준다. 마케팅 담당자가 research agent를 만들고, 재무팀이 보고서 분석 workflow를 만들며, 영업팀이 account research를 자동화하고, 개발자가 여러 coding agent를 병렬로 실행할 수 있다. HR이나 법무, 운영 조직도 자신의 업무를 자연어 instruction과 tool connection으로 조립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회사가 사용하는 내부 software의 상당 부분이 전통적인 software development process를 거치지 않고 만들어질 수도 있다. Spreadsheet에서 일어났던 권한 이동이 다시 반복되는 셈이다.

Central IT          → End-user spreadsheet
Central AI platform → End-user agent / workflow

다만 이번에는 범위가 더 넓다. Spreadsheet는 계산을 만들었지만 AI agent는 행동을 만든다. 파일을 읽고 검색하고 메일을 보내고 코드를 수정하며 CRM을 업데이트하고 다른 agent에게 일을 넘길 수 있다. 따라서 spreadsheet 시대의 shadow IT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공식 시스템 바깥에서 누군가 만든 agent가 실제 업무를 수행하지만 조직은 그 agent가 어떤 권한을 가지고 무엇을 실행하는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하는 shadow workflow다.

결국 기업은 agent identity, permission, audit trail, policy, evaluation 같은 새로운 통제 계층을 필요로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Spreadsheet가 end-user computing control이라는 문제를 만들었다면, AI agent는 Agent Governance를 기업 인프라의 일부로 만들 수 있다.

AI는 조직을 더 flat하게 만들 수 있지만 권력을 반드시 분산시키지는 않는다

현대 기업에서 manager가 하는 일의 상당 부분은 정보 처리다. 정보를 모으고 상황을 요약하며 누구에게 어떤 일을 줄지 판단하고, 진행 상태를 확인하면서 다른 팀과 연결하고 문제가 생기면 escalation한다. AI가 이 비용을 크게 낮추면 한 명의 manager가 다룰 수 있는 범위는 넓어질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역설이 있다. 조직은 더 flat해지면서 동시에 더 centralized해질 수 있다. 중간관리 계층이 줄어드는 반면 최고 의사결정자는 operational data, communication, agent log와 AI synthesis를 통해 과거보다 조직의 더 깊은 곳까지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이다. hierarchy가 줄어드는 것과 권력이 분산되는 것은 같은 현상이 아니다.

그래서 앞으로 manager를 이해하는 데 span of control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사람 몇 명을 관리하느냐보다 인간과 agent, workflow와 exception을 얼마나 복잡하게 조정할 수 있는지가 중요해질 수 있다. 이를 span of complexity라고 보는 편이 지금 일어나는 변화를 더 잘 설명한다.

하지만 AI에는 spreadsheet에 없던 능력이 하나 있다

여기까지 논리를 밀어붙이면 AI가 조직을 더욱 기계적으로 만들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AI와 spreadsheet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Spreadsheet는 구조화된 정보에 강했지만 AI는 회의의 뉘앙스, 고객 불만, 엔지니어의 설명, 오래된 이메일, 코드 리뷰, 사고 보고서와 대화처럼 과거에는 숫자로 만들기 어려웠던 정보까지 읽을 수 있다.

따라서 AI가 반드시 spreadsheet보다 더 환원주의적인 조직을 만든다고 볼 이유는 없다. 오히려 지금까지 기업이 숫자로 표현하지 못했던 맥락을 처음으로 운영에 포함시키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 이 가능성은 이 글의 중요한 반론이기도 하다.

문제는 AI가 이해하는 단계에서 행동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이다. Agent에게 실제 업무를 맡기려면 무엇이 목표인지,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어떤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지, 언제 성공한 것으로 판단할지, 어떤 경우 인간에게 넘길지를 정의해야 한다. 결국 업무는 task로 분해되고 workflow는 분석 가능한 형태로 바뀌며 결과는 evaluation 가능한 상태가 되어야 한다.

AI는 세상의 더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지만, 기업은 AI에게 행동을 맡기기 위해 다시 세상을 구조화해야 한다. 여기에서 새로운 tension이 생긴다.

AI가 이해할 수 있는 것 ≠ AI에게 맡길 수 있는 것

기업은 후자를 늘리기 위해 업무를 점점 더 명시적인 workflow로 바꾸려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AI를 Excel의 후계자로 본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과 비교하는 것보다 기업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는 AI를 Excel과 비교하는 편이 오히려 더 흥미롭다. 둘 다 현업에게 새로운 programming capability를 줬고, 새로운 종류의 모델을 만들 수 있게 했으며, 처음에는 개인 생산성 도구처럼 들어왔다. 그리고 둘 다 빠르게 회사의 비공식 infrastructure가 될 가능성이 높다. 충분히 보급된 뒤에는 결국 governance 문제가 뒤따른다는 점도 닮았다.

차이는 최적화 대상이다. Spreadsheet가 Numbers → Models → Metrics → Capital allocation의 흐름을 만들었다면 AI는 Language → Tasks → Workflows → Organizational action을 연결한다. Spreadsheet가 기업을 cash flow의 관점에서 읽기 쉽게 만들었다면 AI는 기업을 workflow의 관점에서 읽기 쉽게 만들고 있다.

읽기 쉬워지면 측정할 수 있고, 측정하면 비교할 수 있으며, 비교하면 자동화하고 최적화할 수 있다. 최적화가 충분히 오래 지속되면 조직 자체가 그 방향으로 변한다. 그래서 AI-native company를 단순히 "AI를 많이 사용하는 회사"라고 정의하는 것은 부족하다. 아마 더 정확한 정의는 업무가 AI에게 관찰 가능하고, 위임 가능하며, 검증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회사에 가까울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닐 수도 있다. AI가 읽고 평가하고 최적화할 수 있는 형태로 조직을 바꾸는 과정에서 무엇이 표현되지 않은 채 사라지는가. Spreadsheet는 기업의 숫자를 보여줬지만 숫자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주변으로 밀어냈다. AI는 훨씬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번에는 무엇을 보지 못하는지 알아내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


참고한 글: David Oks, "Seeing like a spreadsheet", Denoiser 한국어판

Counterarguments

  • 스프레드시트는 금융화나 단기주의의 원인이라기보다 이미 진행 중이던 제도·자본시장 변화를 실행하기 쉽게 만든 보조 도구에 가깝다.
  • AI는 비정형 정보까지 처리할 수 있어 스프레드시트보다 조직의 맥락과 암묵지를 더 잘 보존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