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경제성장을 설명할 때는 두 개의 익숙한 서사가 자주 충돌한다. 하나는 강한 중앙정부가 자본과 산업을 밀어붙였다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개혁개방으로 시장을 열었기 때문에 성장했다는 이야기다. 둘 다 일부는 맞지만, 1980년대 이후 중국이 실제로 움직인 방식은 이 둘보다 복잡했다.
중앙정부는 세금과 국유기업, 무역 규칙을 다시 설계해 국가의 동원 능력을 키웠다. 동시에 지방정부와 민간 사업자는 토지, 외자, 지역 네트워크와 사람 사이의 신뢰를 이용해 제도가 아직 따라오지 못한 영역을 메웠다. 중국의 고속성장은 ‘국가냐 시장이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결과라기보다, 강한 공식 제도와 유연한 비공식 관계망이 서로의 빈틈을 메운 이중 구조에 가까웠다.
이 구조는 성장 초기에는 강했다. 중앙은 방향과 자원을 집중할 수 있었고, 지방은 투자와 생산을 빠르게 늘릴 유인이 있었다. 계약·금융·정보 인프라가 충분하지 않은 곳에서는 관시(guanxi)와 평판이 거래비용을 낮추는 역할도 했다. 하지만 같은 구조가 시간이 지나면서 지방의 토지재정과 부채, 지역 보호주의, 특혜와 진입장벽을 키우는 경로도 만들었다.
지금 중국이 부동산 조정과 지방부채, 약한 내수 사이에서 새로운 성장모델을 찾고 있다는 사실은 이 오래된 구조를 다시 보게 한다. 과거에 속도를 높인 제도와 관계가 오늘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관시는 ‘제도 공백의 가격’을 낮추는 장치였다
관시를 단순히 인맥이나 청탁으로 번역하면 경제적 기능을 놓치기 쉽다. 중국 사회학자 페이샤오퉁이 설명한 ‘차등적 관계망’은 개인을 중심으로 가족, 친척, 동향, 지인처럼 관계의 거리에 따라 의무와 신뢰가 달라지는 구조를 묘사한다. 이후 연구들은 이 개념이 혈연만이 아니라 비혈연 관계와 사업 네트워크까지 확장된다고 지적해 왔다.[^1]
시장 거래에서 중요한 점은 친밀함 자체가 아니다. 공식적인 신용평가와 계약 집행이 약하거나 비싼 환경에서는 누가 누구를 소개했는지, 평판을 잃었을 때 어떤 비용을 치르는지가 일종의 비공식 담보가 될 수 있다.
중국 중소기업 네트워크를 연구한 문헌에서도 관시는 단순한 사적 친분이 아니라 관계적 신뢰, 계산 가능한 신뢰, 제도적 신뢰가 섞인 거버넌스 장치로 나타난다.[^2] 계약서가 없는 세계를 완전히 대신하지는 못하지만, 상대방의 품질을 알기 어렵고 법적 분쟁 해결이 느린 상황에서는 거래를 시작하는 비용을 낮춘다.
이 점에서 관시는 ‘중국인은 원래 관계를 중시한다’는 문화적 설명보다 제도가 충분히 제공하지 못하는 신뢰를 네트워크가 대신 공급한 것으로 보는 편이 더 유용하다.
다만 장점과 비용은 붙어 있다. 내부자는 빠르게 정보를 얻고 자금을 조달할 수 있지만 외부자는 진입하기 어렵다. 같은 관계가 신뢰를 만들기도 하고, 특혜와 정보 비공개를 만들기도 한다. 제도가 강해질수록 이런 관계망의 경제적 필요는 줄 수 있지만 완전히 사라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최근 연구도 중국 기업 간 거래에서 현대적 관계 거버넌스와 전통적 관시가 함께 존재한다고 설명한다.[^3]

1994년 재정개혁은 중앙을 강하게 만들었지만 지방의 성장 방식을 바꿨다
중국 성장모델에서 더 중요한 공식 제도 변화 가운데 하나는 1994년의 분세제 개혁이다.
개혁 이전에는 중앙정부가 지방에서 세수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웠다. 지방이 세수를 숨기거나 예산 밖 수입으로 돌릴 유인이 컸고, 중앙의 재정능력은 약해졌다. 1994년 개혁은 세목을 중앙세·지방세·공유세로 나누고 중앙정부가 공유세 징수에 직접 관여하는 구조를 만들었다.[^4]
이 개혁은 중앙정부의 재정능력을 강화했다. 그러나 동시에 지방정부가 자체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세원의 상대적 여유를 줄였다.
중국의 지방정부에는 또 다른 특성이 있었다.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인프라를 깔아야 하는 책임은 컸지만 직접적인 차입에는 제약이 있었다. 그 결과 토지사용권 매각, 지방정부융자기구(LGFV), 부동산 개발과 연결된 수입이 중요한 재원으로 성장했다.
최근 연구는 이 연결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중국 지방정부는 토지의 독점적 공급자이면서 토지 용도와 가격을 재정상황에 맞춰 조정한다. 정부의 자금조달 여건과 세수 배분이 산업용·주거용 토지 공급 결정에 실제로 영향을 준다는 분석도 있다.[^5]
즉 중앙집권은 지방의 역할을 없애지 않았다. 오히려 중앙은 재정과 정책의 큰 틀을 강화하고, 지방은 토지·투자·산업유치라는 다른 수단으로 성장 경쟁을 계속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이 구조는 인프라와 산업단지를 빠르게 늘리는 데 강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과 토지수입이 약해지면 같은 구조가 취약점이 된다.
WTO 가입은 중국의 내부 성장 장치를 세계시장과 연결했다
2001년 WTO 가입은 또 하나의 공식 제도 변화였다. 중국은 15년에 걸친 협상 끝에 143번째 WTO 회원국이 되었고, 상품·서비스 시장 개방, 비차별적 대우, 가격·무역 규칙과 관련된 광범위한 약속을 받아들였다.[^6]
WTO는 중국의 성장을 ‘만든’ 단일 원인이 아니다. 이미 1980~90년대에 농촌 개혁, 제조업 성장, 외자 유치와 수출 확대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WTO 가입은 세 가지를 강화했다.
- 첫째, 중국 기업과 외국 기업이 중국의 대외무역 규칙이 급격히 뒤집히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제공했다.
- 둘째, 외국 자본과 기술, 글로벌 공급망이 중국 제조업에 더 깊이 연결됐다.
- 셋째, 중국 내부의 시장화·규제개혁에도 외부 기준을 제공했다.
WTO 역시 중국의 가입이 단순한 관세 인하를 넘어 국내 제도 변화와 구조전환을 촉진했다고 평가한다.[^7]
이 시점부터 중국의 성장모델은 더 명확해졌다. 중앙정부는 산업과 인프라의 방향을 제시하고, 지방정부는 토지와 인허가, 투자유치를 경쟁하며, 민간기업과 화교·해외 네트워크는 자본·정보·거래 상대를 연결하고, 세계시장은 수요를 제공했다.
각 층은 서로 다른 문제를 해결했다.
빠른 성장의 장점과 오늘의 문제는 같은 구조에서 나왔다
이 시스템을 성공과 실패로 나눠 보면 이상해진다. 오히려 같은 제도가 시기에 따라 다른 효과를 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지방정부가 토지와 인프라를 이용해 기업을 유치한 것은 제조업 클러스터와 도시화를 빠르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지방재정이 토지와 부동산에 깊게 의존하면 부동산 조정이 시작될 때 재정도 함께 약해진다.
실제로 세계은행은 지방정부의 직접부채뿐 아니라 LGFV를 통한 예산 밖 부채가 크게 늘었고, 부동산 조정과 토지수입 약화가 지방재정에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8] IMF도 중국의 지방부채 문제를 줄이기 위해 대규모 채무교환이 진행되고 있지만 지방정부와 부동산 관련 기업의 대차대조표를 더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한다.[^9]
관계망도 비슷하다. 관시는 공식 제도가 약한 시기에 거래를 가능하게 했지만, 시장이 커질수록 관계 밖 기업을 배제하거나 지역 보호주의를 강화할 수 있다.
중국이 2014년 이후 지방정부의 법원 인사·재정 통제를 줄이는 사법개혁을 진행한 뒤, 지역 밖 기업이 지역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불리했던 격차가 줄었다는 연구는 이 지점을 보여준다.[^10] 시장 규모가 커질수록 관계 기반 신뢰보다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규칙의 가치가 커진다.
성장 초기에 유용했던 비공식 조정이 경제가 복잡해질수록 오히려 확장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의 중국은 과거 성장모델을 그대로 재가동하기 어렵다
2026년 중국 경제는 여전히 제조업과 수출, 첨단산업에서 강한 경쟁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성장의 무게중심은 달라지고 있다.
세계은행은 2026년 중국 성장률을 4.4%로 전망하면서 부동산 조정, 신중한 소비, 약한 국내수요를 주요 제약으로 꼽았다. 앞으로는 투자와 수출만이 아니라 소비와 생산성 중심의 재균형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11]
IMF의 최근 분석도 비슷하다. 중국 가계소비는 GDP 대비 약 40%까지 올라왔지만 여전히 중소득국 평균보다 낮고, 지방정부와 부동산 관련 부채를 정리해야 금리 인하가 실제 소비·투자로 전달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12]
이것은 단순히 경기부양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는 지방정부가 토지를 팔고 인프라를 늘리며 제조업 투자를 유치하면 성장률을 빠르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 지금은 부동산 수요가 약해졌고 지방정부의 대차대조표에도 부담이 쌓였다. 수출 역시 지정학과 무역장벽의 영향을 더 크게 받는다.
따라서 새로운 성장모델에서는 가계가 소비할 수 있는 소득과 안전망, 민간기업이 예측할 수 있는 규칙, 지방정부의 재정 건전성, 생산성이 높은 서비스와 기술투자가 더 중요해진다.
예전처럼 중앙이 목표를 정하고 지방이 토지와 부채를 동원해 실행하는 방식만으로는 같은 성장률을 반복하기 어렵다.
중국 경제를 볼 때 ‘국가냐 시장이냐’라는 질문이 자주 틀리는 이유
중국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국가와 시장이 동시에 강하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중앙정부는 재정, 금융, 산업정책과 국유기업을 통해 경제에 깊게 개입한다. 동시에 수많은 민간기업과 지방정부는 가격, 수요, 경쟁과 이윤에 매우 민감하게 움직인다. 공식 제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관계망과 지역 네트워크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중국을 순수한 계획경제로 보면 민간기업과 지방 경쟁을 놓치고, 일반적인 자유시장경제로 보면 중앙의 권한과 정책 조정 능력을 놓친다.
더 나은 질문은 각 문제를 누가 해결하도록 설계되어 있는가다.
세수와 국가적 우선순위는 중앙이 강하게 통제한다. 지역 개발과 기업 유치는 지방이 경쟁한다. 공식 금융이 닿지 않는 영역에서는 민간 네트워크가 자금과 신뢰를 연결한다. 세계시장 접근은 WTO와 무역관계 같은 외부 제도가 뒷받침한다.
중국의 고속성장은 이 층들이 동시에 잘 맞았던 시기의 결과였다.
반대로 지금 나타나는 지방부채, 부동산 조정, 내수 부족과 기업 신뢰 문제도 이 층 사이의 오래된 균형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앞으로 봐야 할 것은 ‘통제의 강도’보다 제도 사이의 연결이다
중국 경제를 평가할 때 “정부가 더 강해졌는가” 하나만 보면 중요한 변화를 놓친다.
지방정부가 토지수입 없이도 안정적인 재정을 만들 수 있는지, 민간기업이 관계망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법과 금융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지, 중앙의 산업정책이 실제 생산성과 가계소득으로 이어지는지, 수출 제조업의 경쟁력이 국내 소비와 서비스 생산성으로 연결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관시도 같은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관계 기반 신뢰는 앞으로도 중국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것이 시장의 핵심 인프라로 남는 것과 사회적 관계로 남는 것은 다른 문제다. 경제가 성숙할수록 거래와 투자에서 필요한 것은 개인적 신뢰보다 낯선 사람도 같은 규칙 아래 거래할 수 있다는 제도적 신뢰다.
중국의 다음 성장단계가 성공한다면 과거의 장점을 모두 버려서가 아닐 것이다. 중앙의 장기 조정 능력과 지방의 실행력을 유지하면서, 토지·부채와 관계망에 의존했던 영역을 더 일반화된 재정·법·사회보장 제도로 바꾸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과거 중국의 속도는 공식 제도와 비공식 관계망이 서로의 빈틈을 메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앞으로의 과제는 그 빈틈 자체를 줄이는 일에 더 가깝다.
Sources
[^1]: Jack Barbalet, “The Analysis of Chinese Rural Society: Fei Xiaotong Revisited,” Modern China, 2021. https://journals.sagepub.com/doi/10.1177/0097700419894921 [^2]: Wai Wai Ko and Gordon Liu, “A Typology of Guanxi-Based Governance Mechanisms for Knowledge Transfer in Business Networks of Chinese Small and Medium-Sized Enterprises,” Group & Organization Management, 2017. https://journals.sagepub.com/doi/abs/10.1177/1059601115627942 [^3]: Zhaofang Chu, Fujun Lai, and Linlin Wang, “Leveraging Interfirm Relationships in China: Western Relational Governance or Guanxi? Domestic Versus Foreign Firms,” 2020. https://journals.sagepub.com/doi/10.1177/1069031X20963672 [^4]: NBER, discussion of China’s 1994 tax-sharing reform and fiscal institutions. https://www.nber.org/papers/w25146.pdf [^5]: Zhiguo He et al., “Zoning for Profits: How Public Finance Shapes Land Supply in China,” NBER Working Paper 30504, revised 2023. https://www.nber.org/papers/w30504 [^6]: World Trade Organization, “WTO Ministerial Conference approves China’s accession,” November 10, 2001. https://www.wto.org/english/news_e/pres01_e/pr252_e.htm [^7]: World Trade Organization, “20 Years of China’s WTO Membership: Integration & Development,” December 10, 2021. https://www.wto.org/english/news_e/news21_e/acc_10dec21_e.htm [^8]: World Bank, China Economic Update — December 2025, section on local government debt. https://documents1.worldbank.org/curated/en/099742112172513711/pdf/IDU-da604b39-c3d2-45a2-a326-52290df0d071.pdf [^9]: International Monetary Fund, People’s Republic of China: 2025 Article IV Consultation, January 28, 2026. https://www.imf.org/-/media/files/publications/cr/2026/english/1chnea2026001-source-pdf.pdf [^10]: Ernest Liu et al., “Judicial Independence, Local Protectionism, and Economic Integration: Evidence from China,” NBER Working Paper 30432, 2022. https://www.nber.org/papers/w30432 [^11]: World Bank, “Rebalancing Growth: China Economic Update,” July 7, 2026. https://www.worldbank.org/en/news/press-release/2026/07/07/rebalancing-growth-china-economic-update [^12]: Yanliang Miao, “China’s Emerging Economic Engine,” IMF Finance & Development, September 2026. https://www.imf.org/en/publications/fandd/issues/2026/09/chinas-emerging-economic-engine-yanliang-miao